건축하시느라 고생 많으신 예수님?


저자가 어릴 적 부흥사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지금 주님은 천국에서 맨션을 짓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지으시면 재림하신다고 하셨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닐 때 골목을 지나다가 우연히 눈에 띈 건물이 있었는데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은 **맨션이었습니다. 어릴 적 천국을 생각하면서 맨션을 짓고 계시다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실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에 공동주택은 군인아파트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맨션은 으리으리한 건물, 황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건물인줄 알았다가 낡고 페인트가 벗겨진 맨션을 보는 순간 천국에 대한 환상은 날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심각했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지금 건축 중이실까요? 우리가 거할 처소를 아직 덜 만드셔서 오지 못하고 계신 것일까요?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시겠다(요14:3)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오해를 낳은 이야기를 유대인의 문화를 통해 알아보면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더 이상 이런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결혼문화는 어릴 적 부모들에 의해 배필이 정해지기도 했지만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그는 잔치할 돈을 준비하여 여인의 아버지에게 가서 일주일여 동안 청혼을 위한 잔치를 하겠다고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면 여인의 아버지는 그가 가지고 온 돈으로 마을 잔치를 열고 손님들을 초청합니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청혼하고 있는 남자에게 술을 먹여봄으로 술버릇도 알아보고 시비도 걸어보고 지식도 알아보며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고 관계하는지를 시험합니다. 이를 방안에서 여인이 지켜보게 됩니다. 잔치가 끝나는 마지막 날 청혼자는 여인 앞에 나아가 잔에 포도주를 따릅니다. 그러면 청혼을 받은 여인은 그 포도주 잔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포도주 잔을 받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반대로 마음에 들었을 때는 포도주 잔을 받아 마시게 됩니다. 그러면 청혼자는 여인에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여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리라”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 둘은 혼인한 것과 동일한 처지가 되며 일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신랑의 아버지는 아들을 신부의 집으로 보내 신부를 데려오게 합니다. 이때는 신랑의 아버지가 결정하기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하신 것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데려올 때 신부의 집에서도 잔치를 하는데 이는 딸을 보내는 아쉬움으로 하는 잔치이고 신랑과 신부는 신랑의 집에 와서 본격적이 결혼 잔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혼과정에서 처소를 예비하겠다는 말의 초점은 집을 짓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다시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약혼 기간을 일 년여 이상의 기간을 갖는데 이 기간에 신랑은 신혼의 삶을 준비하고 신부는 순결을 유지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신다는 표현의 주목적은 처소예비가 아니라 신부가 신랑을 순결로 기다리며 아버지만 아시는 그날을 신랑인 예수님도 신부인 성도도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것에 초점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처소를 예비한다는 말을 집을 짓고 있다고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육일 만에 창조하신 주님께서 철근 넣고 시멘트 부으시며 건축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가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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