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메뚜기 채집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마3:4)”

아직 새벽이 한창일 때 요한은 잠에서 깨었고 평소에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민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깊은 기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요한은 강렬한 햇볕으로 인해 아침이 한참 지났음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허기를 느낀 요한은 다 헤진 자루를 들고 끼니꺼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한참을 광야를 헤맨 요한은 메뚜기 열댓 마리를 잡았습니다. “에휴 오늘을 수확이 적네. 어쩌겠어. 이것이라도 먹어야지” 요한은 잡아온 메뚜기를 맛이 아닌 생존을 위해 한 마리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맛이 없어 더 이상은 그냥 먹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보았던 석청이 있는 바위산으로 갔습니다. 요한은 풀들을 모아 횃불을 만들어 연기를 피우며 바위를 기어올라 벌을 쫓고 손을 내밀어 꿀을 한 움큼 집어 들고 내려왔습니다. 이정도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습니다. 눈두덩과 입술을 벌에 쏘였지만 덕분에 맛없는 메뚜기를 꿀과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해는 지고 하루가 다 갔습니다.

ㅋㅋㅋ 소설을 썼습니다. 요한이 이랬을까요? 요한은 광야에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종일 메뚜기 채집과 벌꿀을 모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와 석청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메뚜기와 석청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메뚜기와 석청이라고 한 것은 우리 문화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사실 요한이 생활했던 광야에는 메뚜기도 석청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광야에는 풀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먹고 사는 메뚜기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풀이 없기에 꽃도 없고 꽃이 없기에 벌도 없고 벌이 없기에 꿀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광야에는 메뚜기도 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뚜기와 석청은 무엇일까요?

먼저 메뚜기는 우리가 잘 아는 쥐엄나무 열매입니다. 그 이유는 쥐엄나무를 히브리어로 하루빔(haruvim)이라고 하고, 메뚜기를 하가빔(hagavim)이라고 하는데 발음이 비슷한 이유로 쥐엄나무를 메뚜기나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쥐엄나무 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영명은 locust tree(메뚜기 나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세례요한의 식량인 메뚜기에서 비롯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는 콩꼬투리가 납작하고 폭이 3~5cm에 길이는 15~25cm나 되며, 그 속에 동글납작한 완두콩 같은 5~10개의 씨가 있고 그 껍질은 단맛이 나는데 이 껍질을 먹는 것입니다. 이는 생으로 먹을 수도 있고, 즙을 짜내어 이용하기도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 되고 있어서 탕자도 이것을 먹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마른 것은 가루를 내어서 엿을 만들기도 하고 알코올의 원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보낸 진상품 중에 꿀이 있었는데 그 꿀이 바로 쥐엄 열매를 달인 것입니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조청인 것입니다. 또한 꼬투리 속의 콩의 무게는 0.2g인데 신기하게도 모든 콩이 일정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무게를 다는 추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캐럿'carat이라고 하여 보석의 무게를 재는 기준이 된 것입니다.

또한 석청은 벌꿀을 의미하지 않고 종려나무열매를 말합니다. 종려나무열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추야자입니다. 이것이 땅에 떨어져 뜨거운 햇볕에 녹아 돌 틈 사이에 스며들게 되는데 이를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석청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하루 종일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고 벌에 쏘이며 석청을 채취하며 산 사람이 아니라 광야에서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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