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처신법’?

예의만 지켜도 절반 성공

공자가 오늘 이 땅에 살아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휙휙 날아다니는 비행기에도 놀라고, 사진이며 글이며 순식간에 주고받는 인터넷에도 놀라고,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워낙 식견이 뛰어난 분이니 오랜 세월 동안 그만한 발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일지 모른다. 과학문명의 발달에는 분명 고개를 끄덕일 터이지만 인간 도리의 기본인 효가 무너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어떨까. 공자는 소학에서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고 해서 부모를 봉양만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집에서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애완견보다 못한 신세의 노부모들이 허다하고, 아예 ‘나 몰라라’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식들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효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운동까지 펼쳐지겠는가. 뭐 공자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다복한 가정에서 자식 봉양 받고 사는 노인들에겐 효도법 운운은 생경할 뿐이다.

늘어나는 속앓이 시어머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 통계에 따르면 이혼 사유 중 고부갈등이 첫째 원인이 된 경우는 지난 1998년 70건으로 전체의 3.9%. 그러나 지난해는 15건으로 1%에 불과했다.

이 상담소 박소현 위원은 “며느리와의 관계를 상담하는 시어머니가 고부갈등을 상담하는 며느리만큼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양상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홍수처럼 밀려오는 사고의 변화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씨는 “균등한 교육을 받은 며느리들이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시어머니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시어머니 세대가 감지해 어쩔 수 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며느리 세대의 취업이 증가하고 분가가 일반화되며 시집보다는 친정 쪽과 더 가까워지면서 시어머니의 개입 여지가 적어진 것도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박위원은 “이혼이 급증하면서 아들 부부가 제발 잘 살기만을 바라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최근 눈에 띄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변모에 속앓이를 하는 시어머니들도 많다. 며느리가 두 명 있다는 전모(62.서울 신정동)씨는 “요즘 며느리들이 시집을 싫어하는 수준은 가히 엽기적”이라며 “요즘은 시어머니가 약자”라고 서글퍼했다.

또 다른 주부 정모(56.성남시 분당구)씨는 “필요할 때면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면서 시부모에 대한 도리는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구씨는 “요즘 젊은 세대는 경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자유는 누리고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식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소외감 때문에 시어머니들이 억울함을 누르고 노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어머니 ‘며느리살이’ 힘겹다

“우린 기본을 지키는 고부관계”라고 말하는 변소영(37.서울 명륜동)씨와 시어머니 이부자(64.서울 압구정동)씨. 이씨는 며느리에게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변씨는 어른 앞에서 반박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간다고 말한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읍에 사는 김원희(64)씨 부부는 매주 토요일이면 양손에 음식 보따리를 들고 서울 영등포 아들집을 방문한다. 매주 아들 부부 ‘손님’을 맞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도 깨끗이 해둬야지요, 먹이고 반찬 들려 보내고 나면 다시 뒷정리하느라 주말이 아주 고역이었어요.” 그래서 김씨 부부는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어 가고 며느리는 밥만 하게 하니 서로 부담되지 않아 좋다고 말한다.

이순자(58.성남시 분당구)씨 부부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여의도에 있는 아들. 며느리 직장 근처로 가 아들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온다. 직장 생활을 하는 며느리에게 주말의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아들 부부가 이씨집에 오려고 해도 등산 등의 핑계를 대며 “오지 말라”고 한다. “오라 가라 하면 주말에 쉬지 못한 며느리가 시집을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란다.

시어머니가 달라지고 있다

‘시’자 때문에 며느리들이 시금치를 싫어한다는 세상, 화장실과 시가는 멀면 멀수록 좋다는 우스개가 회자되는 시대다. 잡아당길수록 멀어져가는 며느리와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 보기 위해 50~60대 ‘신세대’ 시어머니들이 달라지고 있다.

주부 조숙자(57.서울 서초동)씨는 “동창회에서 한 친구가 ‘주말 마다 시댁에 오라고하면 간 큰 시어머니로 찍히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 모두 웃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외식으로 일은 덜어주고 가능한 한 자주 만나는 기회를 만들려 한다.”고 세태를 전했다.

살림을 가르치는 일도 요즘 시어머니들이 자제하는 일 중의 하나다. 3년 전 며느리를 봤다는 박금숙(61.수원시 정자동)씨는 “며느리가 싫어할까봐 냉장고 문 열어보는 것도 자제한다. 살림을 가르치려 해본들 사이만 나빠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모른 척 한다.”고 말했다.

시어머니 노릇은 50~60대의 모임에서 손꼽히는 화제다. 권순자(59.서울 청담동)씨는 “주변에서 ‘시어머니로서 대접받기를 포기했다.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며 “시어머니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라고 말했다. 가정상담 전문가 구훈모씨는 “무조건 대접받길 원하거나 시키는 대로 따라오길 바라거나 며느리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등 옛날처럼 ‘부적절한 순종관계’를 요구하는 시어머니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구씨는 “며느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상관없이 시어머니 스스로 매우 자제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변모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건강한 관계을 위하여

자식처럼 서로 아끼며 존중

“일산 사는 장남이 같이 살자고 했지만 생활근거지를 옮기기 싫어 같은 동네에 살던 큰딸과 살림을 합쳤어요. 혼자 사는 것보다는 역시 같이 사는 게 좋더군요.”

김씨는 윤씨의 말에 “아무렴. 요즘은 노부부가 따로 살기도 한다지만 자식과 같이 사는 게 좋지, 무슨 소리냐”고 장단을 맞춘다.

윤씨는 사위와 함께 화투놀이도 즐기고 드라마도 같이 본다며 딸보다 사위와 더 친하다고 자랑했다. 김씨도 아침 일찍 나갔다 늦게 들어오는 아들보다는 아침, 점심, 저녁 같이 먹고 이 얘기 저 얘기 같이 할 수 있는 며느리가 더 좋단다.

“잘못하면 야단도 치지만 ‘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 그 한마디면 끝이에요. 밥도 며느리가 없으면 맛이 없어. 쇼핑도 같이 가고…. 이제 며느리가 남편 같고 친구 같고 딸 같아.”

나이 들면 외로움도 쉬 타는 법. 옆에 살붙이가 있어 부대끼며 사는 게 당연히 좋을 게다. 같이 사는 자식들도 한마음일까.

김씨의 며느리 이희순(55)씨는 스물 두살에 결혼해 이제껏 시부모 모시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머님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웃어른이니 조심스러울 뿐 불편한 것은 없어요. 어머님이 너그러워 효자효부 소리 듣고 삽니다.”

이씨는 딸도 없는 외아들에게 시집와 딸만 넷 낳았지만 그 때문에 싫은 소리 한번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둘째딸을 낳은 뒤 며느리에게 “몸 생각해서 그만 낳으라.”고 하면서 아들에게는 “딴 생각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친정어머니와 같이 산 지 올해로 6년째인 윤씨의 딸 박희순(46)씨도 “엄마와 같이 살아 좋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아무래도 좀 어려울 텐데 친정엄마는 편하지요. 집안일도 도와주셔서 우리끼리 살 때보다 훨씬 좋아요.”

박씨는 전에는 아이들 교육문제로 남편과 가끔 다투었으나 친정엄마와 살림을 합친 뒤에는 걱정 끼칠까봐 큰소리를 낸 적이 없단다. 그러다보니 부부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며느리와 딸의 얘기를 듣는 김씨와 윤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영글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나이든 우리만 좋은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어찌 없었을까. 자식들도 같이 사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은 기분이 한껏 좋아져 수다보따리를 풀었다. 어버이날 자식들에게 받은 선물자랑부터 요즘 배우고 있는 노래와 무용, 즐겨보는 TV 방송 드라마 얘기까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꽃을 피우던 두 사람은 “요즘 세상이 바뀌긴 바뀐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딸들과 함께 산다면,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어 좋겠다고 하더군요.”

윤씨는 예전 같으면 딸네 집에 얹혀사는 불쌍한 노인 취급받았을 텐데 오히려 모두들 부러워한다고 전한다. 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녀만 넷이라도 어찌나 착하고 예쁜지 손자 없다고 한탄한 적 없다.”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 자식만큼 가까운 사이가 어딨어.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지요.”

김씨의 말에 윤씨는 “형님 말씀이 옳다”고 했고, 며느리와 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만 같다면 효도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칭찬은 많이 비난은 적게

자식이 부모를 한집에서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와 함께 사는 것, 또는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됐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살기로 결정해서 한집에 산다고 해도 예전처럼 부모와 자식부부가 온전히 동심원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부부는 각기 중심점을 가진 두개의 원으로 살게 된다. 하지만 부모를 중심으로 다른 생각 없이 살았던 노인세대들은 두개의 원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자식과 같이 살아도 불행하다는 푸념을 하게 된다. 또 그런 부모를 보는 자식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부모 중심으로 살았던 노부모와 부부 중심으로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젊은 부부들이 한 집에 살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로에게 애정과 관심은 갖되 그것이 참견이나 간섭으로 보이거나 발전이 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 세대는 “우리는 부모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감히 말대꾸를 하다니…” 등등 옛날을 생각하고 서운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성격진단카운셀러 노혜진씨는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 장인장모와 사위 등 법으로 맺어진 가족관계의 경우 예의만 제대로 지켜도 절반은 성공한다.”며 예의를 깍듯이 갖추고 말과 행동을 절제하라고 조언한다.

“그때그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지만 노씨는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솔직할 경우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염려가 크다는 것.

노씨는 그래도 부모 자식간의 정을 다지고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푸는 것은 대화밖에 없다며 알맞은 대화법을 터득할 것을 제안한다.

“잘못된 의사소통은 왜곡된 감정이입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감정을 절제해야 하고, 적절한 언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화가 났거나 서운한 경우에는 특히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칭찬은 많이, 비난은 적게 하는 것이 좋지요.”

◇고부관계 원만하게 하는 10계명

● 상대에게 우월감을 표출하지 말라

● 진실하고 간결하게 말하라

● 칭찬을 아끼지 말라

● 상대의 잘못을 알고 있어도 섣불리 지적하지 말라

● 상대의 이야기를 충실히 들어줘라

●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줘라

● 아이들을 중간 매개로 삼아라

●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

●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믿어라

●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인정하라

“강요도 말고 아부도 말라”

“시어머니가 강압적으로 요구하던 시대도 지났지만 며느리에게 아부하지도 말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부부교육 등을 해 온 가정문제전문가 우애령 박사는 “시어머니들의 변모된 모습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부갈등은 여전히 숨어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부 시어머니들이 겉으로는 관대하지만 속으로는 알아서 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 경우 시어머니 기준에서는 너무 잘해주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성가시고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분석했다.

우박사는 시어머니들이 우선 마음에 없는 소리, 마음과 반대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특히 잘해주는 것이 지나쳐 며느리에게 아부를 하게 되면 권위가 서지도 않거니와 진심으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또한 스스로 마음속에 울화가 쌓여 어느 순간 폭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결혼 초기 ‘며느리 오리엔테이션’도 한 방법으로 제안됐다. 결혼이 정해지면 혼수부터 준비할 게 아니라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서로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것이다. 생일이나 제례 등과 관련해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하고 약속을 하는 것도 좋다. 강요는 하지 않되 의사전달은 분명히 해야 한다. “너희들이 보고 싶다. 시간되면 좀 오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자녀들의 의사에 귀 기울이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며느리를 인간으로 여기고 인간으로 만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편 가정문제 상담가 구훈모씨는 “시어머니 세대가 자녀에게 아낌없이 주고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배우자가 없고 전업주부였던 시어머니의 경우 자녀와의 소원해지는 관계에 더 불안해한다.”며 “자기 나름의 노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원: 2004년 5월 3일 중앙일보, 20일 국민일보/ 종합정리

자료원 가정과 상담

출판사 한국가정사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