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의 반전


로뎀나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쉼”입니다. 그래서 많은 상호나 단체 이름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로뎀나무의 자체의미는 그와는 반대입니다. 그것은 “쉼”이 아니라 “비참”을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로뎀나무가 몇 번 등장합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장면이 엘리야가 이세벨의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가 브엘세바와 호렙산의 로뎀나무 그늘에 누워 죽기를 구했던 장면입니다(왕상19:4). 이 장면에서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잠을 청한 것은 쉼이 아니라 비참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광야의 뜨거운 태양 아래 쉴만한 그늘이 없는 곳에서 로뎀나무 그늘은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 그늘이 크지 못하여 머리를 처박고 웅크리고 비참하게 잠을 잘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로뎀나무를 우리 나라사람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로뎀나무의 학명이 싸리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권 사람들도 이 로뎀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외에도 이 로뎀나무와 관련하여 비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첩 하갈입니다. 그가 교만하게 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힌 일로 인해 쫓겨나 광야로 나갔습니다. 하갈은 광야의 더위로 인해 죽어가는 아들을 떨기나무 아래 두고 화살이 날아갈 거리정도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통곡했습니다(창21:14-16). 이 본문에서 떨기나무로 번역되었던 나무가 로뎀나무입니다. 또한 욥기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꺾으며 대싸리(로뎀나무)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욥30:4).”라는 욥의 고백을 통해 그 나무의 뿌리를 먹어야 할 정도로 비참해진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뎀나무는 인생의 비참함을 나타내려 할 때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의미하는 비참은 하나님으로 인해 반전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위로”라는 반전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하게 그 나무 아래에서 태양을 피하며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를 옆구리 질러 혼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엘리야처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한마디 말로인해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 유대 땅 최남단 브엘세바와 호렙산까지 이르러 죽기를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께 혼나야 마땅함에도 하나님은 그를 어루만지시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갈에게는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비참한 모정에 샘을 보게 해 주셔서 물을 주실 뿐 아니라 이스마엘도 한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욥도 로뎀나무 뿌리의 쓴맛처럼 고난 속에서 건져 주셔서 이전과는 다른 신앙과 복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뎀나무는 비참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나무에 주님께서 찾아오시면 그것은 놀라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건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문제 등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로뎀나무 아래에 피하여 죽기를 구합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숯불에 구운 떡과 물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광야에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낙담하고 절망하기 보다는 그곳까지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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