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아래

이스라엘 갈멜산에 가면 상수리나무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 도토리와는 달리 더 크고 길쭉하게 생겼지만 그곳에도 도토리가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상수리나무는 우리글 성경에 31회나 등장합니다. 그 시작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세겜 땅에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 곳에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그 나무 이름을 성경은 기록하기를 “모레 상수리나무(창 12:6)”라고 하고 있습니다. “모레”란 “지시하다, 선생”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모레 상수리”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있는 상수리나무란 의미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상수리나무는 그 사건과 관련하여 지명이나 나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3장 18절의 “마므레 상수리”는 “강한 상수리”라고 하여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분가하여 정착한 곳에 있는 상수리나무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켜주셔서 강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35장 8절은 “알롯바굿”이라 하여 “통곡의 상수리”라는 의미인데 이는 리브가의 유모가 죽어 그를 장사지내며 슬퍼하던 장소에 있는 나무였습니다. 사사기 9장 27절은 “므오느님 상수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점쟁이들의 상수리”라는 의미로 그 나무 아래에서 우상숭배자들이 점을 치거나 우상 숭배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상수리나무는 제단을 쌓은 곳이거나 시체를 묻는 곳,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드러내시려는 의도로 쓰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큰 나무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 준다고 여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수리나무는 위용이 건장하고 장수하며 그늘이 수려한 점 등이 위대하게 여겨져서 힘, 성실, 보호, 장수, 영광, 거짓 가르침에 대한 저항 등의 상징으로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듬직한 줄기는 능력, 용기, 영예 등의 표시로 쓰이기에 가장 적합한 나무라 하여 숭배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나무는 히브리어로 “엘라”, 또는 “엘론”이라고 합니다. 엄격하게 “참나무”, “테레빈나무”라고 해야 옳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 단어의 어근이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이라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상수리나무를 신성시 했고 그것은 가나안 사람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상숭배 장소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었지만 초기 족장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이 상수리나무와 관련되어 재미있는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됩니다. 그것은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역했을 때의 일입니다. 압살롬은 요단을 건너 도망간 다윗을 쫓아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때 다윗은 그의 군사들에게 아들 압살롬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전쟁이 극렬해졌고 압살롬은 그의 노새를 타고 상수리나무 아래를 급하게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를 왕감이라고 여기게 했던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렸고 결국 다윗의 군장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왜 상수리나무에 걸렸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에게 반역한 압살롬을 심판했음을 암시합니다. 신성을 부여받았던 나무인 상수리나무가 압살롬의 머리채를 잡아챘고 그 결과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선포한 것이 된 것입니다.

상수리나무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로 쓰였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예배하는 교회, 기도, 그리고 헌신과 헌물이 우리의 성공과 성취, 부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우상숭배의 터인 상수리나무 아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장소와 행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