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가 나무가 뭔 잘못이 있다고......,

 

 

예수님은 마지막 일주일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나오셔서 약 3Km정도 떨어진 베다니에서 주무셨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침을 드시지 않았기에 시장기를 느껴 길옆에 있던 무화과나무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혹시 열매가 있나하여 찾아보았으나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말씀에 있습니다. 그 말씀은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무화과나무가 잘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상한 분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신 주님이 문제이지 나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저주를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히브리 원어와 무화과에 대해 이해하고 보면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지난 4월초부터 10월까지 다섯 번의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인 우기를 지난 후에 유월절이 다가오면 잎사귀가 생기고 첫 열매인 무화과가 맺히고 뒤를 이어 계속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첫 열매와 뒤에 이어 나오는 열매의 히브리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는 “파게”라고 하고 뒤이어 나오는 열매는 “테에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찾으신 열매는 “파게”이고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셨을 때의 단어는 “테에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달리 말하면 “테에나의 때는 아니지만 파게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는 풍성했으나 회개하지 않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이 무화과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열매인 파게는 상품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겨울 내내 과일을 먹지 못하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첫 열매의 반가움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할 때의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호9:10)”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를 보실 때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파게”가 떨어지지 않으면 “테에나”가 열리지 않습니다. 이 파게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 떨어집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하나님은 나훔서 3장 12절에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갑작스런 멸망을 예언 할 때 “너의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스토리 바이블 성경통독원 원장 황규관 목사>

또한 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때는 사람이 일일이 따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농장에 들어와 따 먹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따서 버려야 하는데 따는 수고를 덜어주니 반대할 이유가 없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남의 것이지만 당당하게 다가가 무화과 열매를 찾은 것입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나 사람들이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율법이나 기득권, 선입견 등을 버려야 성령께서 들어가 그들의 열매를 “테에나”되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할 수 있습니다.

영적 무화과인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종교적인 모습만 가득하고 열매는 없는 성도는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찾아와 열매를 찾으실 때 잘 익은 “테에나”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