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언어를 담으라! 누가복음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축복하십니다.


 데칼코마니,‘전사법(轉寫法)’이란 뜻으로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바르고 그것을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그 위에 겹쳐 압착했다가 떼어내면 거기에 색다른 채색상태가 생겨 다양하고 환상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1.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언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언어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잘못된 언어는 이기적 언어(거짓, 비난)와 분노(불평, 다툼)의 언업니다. 이기적 언어는 내가 하고싶은 말만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 결과 거짓과 비난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집니다. 내 위주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가기에 좋은쪽으로 말을 합니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과 상사의 대화내용입니다. 하루는 김 대리가 부장에게 월차를 내서 하루 쉬겠다고 휴가신청을 했습니다. 그 때 부장님이 김 대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김 대리, 1년이 며칠인가? 365일이지. 그리고 하루는 24시간이야. 자네의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이니까 하루 중 3분의 1을 근무하는 샘이라네. 결국 1년 동안 자네가 일하는 시간은 365일 중 120일 밖에 되지 않아. 그런데 또 일요일에는 쉬지 않은가? 1년은 52주니까 52일을 빼면 자네가 일하는 시간은 68일이 남네. 게다가 토요일은 자네 오전근무만 하니까 또 26일을 빼야 하네. 결국 자네가 일하는 시간은 42일 밖에 되지 않지. 그런데 그 시간이라고 해서 자네가 오로지 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네.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담배도 피우고, 이런 시간들을 모두 빼고 나면 남은 시간이라곤 27일 밖에 되지 않아. 게다가 자네 여름휴가가 며칠인가? 10일이지. 27일에서 10일 빼면 17일이 남아. 그런데 유리가 아직 공휴일을 안 뺐잖아. 삼일절, 신정, 구정 등 이런 법정 공휴일을 다 합하면 16일 된다네. 그러니 그나마 남은 17일에서 16일 빼보게 얼마가 남는가? 달랑 하루가 남네. 이렇게 자네가 제대로 일하는 시간은 단 하루뿐인데 그 하루를 휴가를 내겠다는 말인가?”그랬더니 김 대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부장님, 저는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지쳤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입니까? 4,500만입니다. 그 인구 중에 2,500만은 노인이거나 실업자이거나 퇴직자들입니다. 그러니 실제 남는 인원은 2,000만 명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1,600만은 학생이거나 어린이들입니다. 그래서 남는 사람이 400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중 100만 명이 군대에 있거나 공익근무 중이며 100만 명은 국가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몇 명이 남았습니까? 200만 명이 남았습니다. 또 그 가운데 180만 명이 정치를 하고 있거나 지방자치제도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남는 사람이라곤 20만 명입니다. 그런데 또 그 중에 188,000명이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그러니 몇 명 남았습니까? 12,000명입니다. 또 그 중에 11,990명은 감옥에 있습니다. 결국 몇 명이 남았습니까? 2명 남았습니다. 이렇게 남아서 일하는 두 사람이 바로 부장님과 접니다. 그런데 부장님은 매일 제가 올리는 결재서류나 보고서에 도장만 찍고 계시니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저 혼자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피곤하지 아시겠습니까? 모든 일들을 제가 혼자 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해석과 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언어는 타인의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 이기적인 언어의 잘못된 생활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 편리하고 이익이 되는 소리만 듣지는 않는지요. 이러한 이기적 행동은 결국 나 자신을 죄의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발락 왕과 발람 선지자 그리고 나귀의 말> 자기 중심적인 언어인 이기적 언어는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함으로 나를 패망의 자리에 끌고 갑니다. 이러한 이기적 언어는 거짓을 만들고 비난을 만들어 내는 말들을 합니다. 내 안에 잘못된 언어가 있다면 이시간부로 내 속에서 비워버리기를 바랍니다. 또하는 비워야 할 잘 못된 언어는 분노의 언어입니다. 분노의 언어로 인해 나는 물론이고 상대방까지 고통에 이르게 합니다. 분노가 일어나는 원인과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앞서 말한 이기적 언어처럼 내 뜻과 생각과 원하는 것에 맞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고 분노를 발산하는 것입니다. 잠언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분노는 결국 다툼을 만들어 내고 다툼은 그 결과는 생명을 파괴하는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뭍지마 살인을 하는 이들의 마음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가깝게는 가족을 향해 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의 생명까지도 헤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스 신화에 다툼이라는 괴물이 있다. 어느 날 허큐리스라는 청년이 길을 가다가 다툼이라고 하는 괴물과 맞부딛혔다. 다툼이라는 괴물이 허큐리스를 향해 덤벼온다. 허큐리스는 온몸을 던져 맞선다. 마구 때리면서 싸웠다. 그런데 그 다툼이라고 하는 괴물은 맞으면 맞을수록 더 커지고 포악해지는 것이다. 허큐리스는 도망치면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떻게 하면 좋겟습니까?” 그 때 아데나가 이렇게 조언했다. “그 괴물을 무시하고 혼자 날뛰도록 그냥 놔두면 금새 작아진다”. 허큐리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말처럼 다툼이라고 하는 괴물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랬더니 그 괴물은 차츰차츰 힘을 쓰지 못하고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다. 다툼은 같이 대항할수록 커진다.> 분노는 대앙하면 할수록 더 커져서 끝내는 그 분노가 나를 삼켜버립니다. 유순한 말은 분노의 마음을 가라 앉힙니다. 그러나 격한 말인 분노는 결국 화를 만들어 내고 상처와 아픔을 만들어 냅니다. 내 안에 있는 분노의 말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의도와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화를 내기 보다는 잠잠히 기다리고 멈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되길 바랍니다. 이처럼 내가 자주하는 좋지 않은 언어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심결에 나오는 나의 말투 또는 행동이 무엇인지 볼 수 있을 때 이것이 잘 못된 나의 언어라는 것을 의식하고 멈추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의식하고 있을 때 내 안에 있는 잘못된 언어들을 비울서 있습니다. 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인지 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2. 회복의 언어를 담아야 한다.

  1) 생명의 언어인 말씀을 담으라.

  회복의 언어는 내 속에 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선한 언어, 회복의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4장12절“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활력이 있습니다. 즉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뜻합니다. 문자이고 기록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명언과 훈계보다도 더 세밀하고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올바르게 판다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언어인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6장1~9절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아멘. 말씀은 나로 하여금 생명에 이르게 하고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말라기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시편 34편 18절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시편 147편 3절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신다. 페니 제인 크로스비는 출생한지 6주 만에 의사의 실수로 소경이 되었습니다. 볼 수 없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넘어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주님께서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도록 속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영의 눈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시작(詩作)활동을 해서 8000여 편의 찬송시를 작시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 제인 크로스비의 찬송곡이 많이 있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돌아와 돌아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주 예수 크신 사랑"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등등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이 많이 있습니다. 크로스비는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습니다. 말씀이 그 마음 판에 새겨지면서 그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곡 중에 하나가 “주이 음성을 내가 들으니”입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40>

1.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2. 주여 넓으신 은혜 베푸사 나를 받아 주시고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3. 주의 보좌로 나아 갈 때에 어찌 아니 기쁠까 주의 얼굴을 항상 뵈오니 더욱 친근합니다.

  4. 우리 구주의 넓은 사랑을 측량할 자 없으며 주가 주시는 참된 기쁨도 헤아릴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아멘


주의 음성이 들려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그릇에 담겨진다는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그릇에 담겨진다는 것은 나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생활입니다. 의식하고 사는 생활을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쓴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간섭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각하며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분명 그 자리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대화를 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 내가 직장에서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할 때도 같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언어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언어인 말씀입니다. 아멘. 회복을 이루는 두 번째 언어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2) 공감의 언어

 <동영상, 공감-학교폭력 감소> 회복의 언어가 내 마음의 그릇에 담겨지기를 축복합니다. 회복에 이르도록 하는 언어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공감이란 말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주장과 의견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마음의 느낌을 뜻합니다. 즉 상대방의 감정에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을 향해 같이 출구를 찾기 위해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가기 위한 마음 상태로 동행하는 것을 공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론 네 생각이 나의 생각과 맞지 않지만 그래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공통된 것을 찾아 가는 것이 회복을 이루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진심이 담겨진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감의 언어는 말하는 이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향상됩니다.


  3)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입니다.

  회복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언어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입니다. 이 세 마디가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한 마을에 특별한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한 가정의 분위기는 싸늘한 겨울 날씨 같았고 또 한 가정은 온화한 봄 날씨 같았습니다. 겨울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 사이에는 불화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부끼리도 매일 싸우다시피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말다툼이 끈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자녀들끼리도 아옹다옹 다투며 사는게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싸우는 소리는 담을 넘고 넘어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반면 봄 같은 집에서는 가족들 사이에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표정은 천사처럼 밝고 맑았고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또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했습니다. 겨울 같은 집에 사는 식구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집 건너 사는 봄 같은 식구들은 어쩌면 저렇게 항상 웃으면서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끝내 겨울 같은 집 부부가 봄 같은 집을 방문했습니다. 주인 내외와 손님 부부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구고 있었습니다. 그때 봄 같은 집 아들이 그만 비싼 도자기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겨울 같은 집 부부는 생각했습니다. “이 집 아버지는 저 비싼 도자기까 깨졌으니 불호령을 내겠지”,“이 집 엄마는 저걸 치우면서 애를 야단칠게 뻔하지”. 하지만 봄 같은 집 아버지의 입에서는 전혀 뜻박의 말이 나왔습니다.“얘야, 내가 도자기를 넘어지기 쉬운 자리에 올려놓았구나. 미안하다. 많이 놀랐지, 다치지는 않았니” 그러자 봄 같은 집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예요. 그 자리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치우려고 했는데 미처 치우지 못했어요.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그 순간 아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아니예요.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조심성이 없어서 그만 도자기를 깨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겨울 같은 집 아버지가 놀란 표정으로 봄 같은 집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저 비싼 도자기가 깨졌는데 화가 안 나십니까?” 봄 같은 집 아버지가 발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화를 낸다고 깨진 도자기가 원상태로 돌아오는게 아닌데 화를 낸들 뭐하겠습니까? 저희가 화를 내는 순간 도자기보다 훨씬 값진 나의 자녀가 상처를 받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결국 우리 가정의 행복은 깨지게 될 겁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겨울 같은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봄 같은 집 식구들의 한 마디 한마디 속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겨울 같은 집 부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상처를 주고 행복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이루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언어는 상처가 아닌 행복을 만들어가는 회복의 언어가 됩니다. 잠언16: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아멘. 내 마음에서 나오는 선한 말의 우리 몸의 양약이 되는 치료를 이룹니다.“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마디는 회복을 이루는 가장 쉬운 언어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 세 마디를 아끼지 말고 사용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같이 서로 보면서 해본다.> 회복의 언어를 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합니다.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림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머리(지식)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이라고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12:33~37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담겨진 것들이 입 밖으로 나가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정죄함 받음을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내 마음 안에 어떤 말을 담고 사는가에 따라 회복을 이루고 살리는 말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상처를 남기는 말로 결국 그 열매를 먹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내 마음의 그릇에 선한 말, 회복을 이루는 말을 담기를 바랍니다. 그 기초로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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