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에베소서5:1,2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중남미 에콰도르 정글의 와우디족을 향해 1956년 1월 다섯 명의 선교사(미국)들이 복음을 들고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와우디족의 창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의 공격에 총으로 자신들을 보호할 수도 있었지만 한 사람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죽으면서 이들이 남긴 한 마디는 “뿌아 비아 우눈비아,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친구입니다.”란 말이었습니다. 5년 지난 시간 순교한 선교사들의 아내들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가 그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나라의 땅에 가서 복수가 아닌 사랑으로 그들을 돕고 섬겨주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모르는 와우디 족을 향해 알려주고 전해주고 조금이나마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복음의 미개척지인 사람들에게 다가선 것입니다.


저는 이 “창끝”이란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이 커서 조금이나마 그 사랑의 방법대로 살아가려는 믿음의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마음으로 그분의 사랑을 실현한 사람들처럼 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예 믿습니다.’하고 대답 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말합니다. 맞습니다. 요한일서4:7,8“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아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다양한 대답들이 나올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신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다. 공의로운 사랑이다. 용서하시는 사랑이다. 등 대답할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 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은 “내가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할게”입니다. 너희들 대신 죄의 댓가, 어리석음의 대가, 미움의 대가, 욕심의 대가, 탐욕의 대가, 성적인 타락의 대가, 살인의 대가 등의 해결할 수 없는 죄악의 마음에 대한 대가를 친히 지불하신 사랑입니다. 그 대가로 아무 흠이 없고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속죄 제물로 내어주시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요한일서4:9~11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내어 주시는 죽기까지의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 사랑은 지금도 나를 향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된 속성을 녹이시고 씻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에 은혜를 받은 이들은 이 땅에 대한 소망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 주어지는 부와 명예 그리고 고난과 핍박을 넘어서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야만인 와우디족을 향해 죽음도 불사하고 찾아간 다섯 명의 선교사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보여준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닌 믿음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와우디 족을 향한 선물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는 자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도 또 그들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분이 보이신 “사랑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보이신 사랑은 자기 희생의 사랑입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아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드림을 말합니다. 이는 충분한 벗어날 수 있고 권세와 능력을 행하여 고통과 고난을 모면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은혜와 사랑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본받는 자가 되어 사랑 가운데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받은 그 사랑의 은혜로 현재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2. 편안함을 버리는 사랑 “자신을 버리사”(2절)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는 paradivdwmi(파라디도미)입니다. 원어의 의미는“넘겨주다. 포기하다. 기꺼이 죽는 것, 희생하다.”란 뜻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내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으나 나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사랑을 말합니다.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아기를 기르는 엄마가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아기를 양육하려면 시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엄마의 젓을 먹기 시작하거나 우유를 먹어야 하는 아기는 개월 수에 따라 먹는 양과 먹여야할 할 것들이 다릅니다. 백일까지는 200cc, 이후에는 400cc, 5~6개월이 되면 이유식도 해야되고 kg수가 늘어나면서 먹는 양도 늘려야 하는 수고와 4시간마다 아이의 분유를 타는 일, 자다가도 기저귀를 갈아줘야하는 불편함, 자가 깨면 또 같이 깨어나야 하는 엄마와 아빠의 자녀 양육을 보더라도 사랑은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로 사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식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해 전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란 내용의 “가족”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적이 있습니다. 50 중반의 딸이 병환 중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셨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을 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좋아 하는 계란 반찬, 고기 반찬 등의 맛있는 반찬을 하나도 손대지 않아서 싫어하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야 자신이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았다고 고백하며 병환 중에 계신 엄마에게 음식은 건네면 이제는 맛있고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아무리 많이 갔다 줘도 드시지도, 입지도 못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랑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 가운데 산다는 것은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자신이 충분히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는 능력이 있었지만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속죄물로 자신의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사야서53:5~7“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아멘. 예수님이 자신의 권한을 버리고 희생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든 질고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복되어지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것을 버렸기 때문에 살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것을 하나, 둘, 셋, 넷, 계속 버리는 작업입니다. 다섯 명의 순교자로 인해 한 번도 예수님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와우디 족에 복음이 선포되었고 와우디 종족이 믿음으로 회복되어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가 바은 사랑, 우리가 누린 은혜, 우리가 가는 천국의 삶을 그들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가르쳐 준 사랑 가운데서 살아갈 때 내 주변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내 가족이 달라지고 내 이웃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백령도의 복음화 예화> 편리함을 포기하는 사랑의 출발은 나의 가족에게부터 시작됩니다.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로 이어집니다. 나와 함께 하는 제자들에게 보여집니다. 나와 함께 하는 이웃들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사랑가운데 행하는 변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로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편안함을 포기함과 동시에“제가 하겠습니다.”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제가 하겠습니다.”로 바꿔가는 것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 듣는 상대방은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그럼 뭘 내가 하는 것일까요. 섬기는 일입니다. 봉사의 일입니다. 복음 전하는 전도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섬김과 헌신으로 행동하는 생활입니다.


  내가먼저손내밀지못하고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수 없는 이마음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맘을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희생의 사랑을 이 땅에서 실현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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